나눔 게시판
HOME > 나눔터 > 나눔 게시판
칼럼: 세상 이야기 1
가인이 세상의 주인이 된 세상
‘가인의 세상이 만들어지기까지’, 물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어쩨서 마치 오늘의 세상 이야기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의문을 말할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세상은 에덴이란 낙원이었다고 생각하면, 오늘의 세상과는 전혀 다르기도 하고 규모도 작으니, ‘가인이 만든 세상’이란 표현이 이상타 여길 수도 있지 싶다. 하지만,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세상이 어디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보면, 그 답은 하나님의 말씀 밖을 벗어난 세상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인정하면서, ‘가인이 만든 세상’이란 표현도 금방 받아들이지 싶다. 아무튼 가인이 만든 세상은 오늘의 세상의 크기와 모양새가 너무 다르긴 하지만, 너무나도 쏙 빼닮았기에 오늘의 세상과 비교하기 위해서 ‘가인의 세상’을 먼저 언급한 것이다.
‘가인이 만든 세상’에 앞서 하나님께서 친히 조성하신 낙원 에덴을 생각해 보자.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등장하기 전이라면, 분명히 오늘의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 동산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부부의 한 가정이 등장해서 변화되는 걸 보면, 진정 오늘의 세상의 뿌리가 바로 에덴이었다는 사실을 금방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에덴에 첫 가정이 등장하자 곧 하나뿐인 그 핵가정이 바로 오늘의 세상의 모습과 동일한 걸 보면, 오늘의 세상은 바로 낙원 에덴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그에게 한 가지 부정명령을 내리신 사실이야 모두 알고 있다. 하나님께선 낙원 에덴에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후 그에게 동산 중앙에 심어놓으신 두 나무, 곧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두 그루 중에서 유독 지식의 나무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큼은 죽음의 경고를 덧붙여 철저히 금하신 걸 보게 된다. 에덴에서, 소위 첫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이 생명이고, 지식인데,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식적 판단을 엄금하신 것이다.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께서 하루하루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그것들에 관해서 ‘좋다.’ 혹은 ‘좋지 않다.’라고 먼저 선언해 놓으셨으면서도 첫 사람 아담에게 선과 악의 지식적 판단을 죽음의 경고로 금하신 것.
창조주께선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의 모든 지식을 쏟아부으셨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모든 피조물은 각자가 스스로 연구해 습득한 지식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지식에 의해 존재케 되었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창조주의 선악의 지식에 따라 존재였으니 자신들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지식을 따르지 않으면 사물의 존재나 삶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각자 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각자의 지식적 판단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적시해서 금하신 것이 선악의 지식적 판단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지식으로 최초에 창조하신 온 우주만물을 피조물인 사람의 선악의 지식적 판단으로 고치려든다면, 하나님의 선악의 판단으로 존재케 된 모든 피조물이 어떻게 각자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지식적 판단의 결정체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그 지식에 의존하고 순종해서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각 피조물의 존재 방식을 다른 존재가 마음대로 바꾸거나 제거할 수가 없다. 더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식을 대체할 피조물의 지식이 존재 응용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창조 시의 모든 하나님의 지식은 이미 모든 피조물 가운데 존재 방식이나 가치 여부도 모두 포함돼 있으니 내가 혹은 네가 다른 피조물들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가 없다는 의미로 창조주께선 인간에게 선악의 지식적 판단을 죽음으로 철저히 금지시키셨다. 다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그 지식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는 뜻이다. 창조주의 지식을 피조물이 각자 자신의 가치관에 얼킨 지식에 따라 선악을 판단해서 다른 존재를 무시하거나 없애버릴 수가 있겠는가?<계속>.
Comment 0
| No. | Subject | Author | Date |
|---|---|---|---|
| Notice | 2024 VBS (여름성경학교) 등록 안내 | 관리자 | 2024.03.29 |
| Notice | 그레이스교회 제3대 담임목사 청빙공고 | 관리자 | 2023.10.13 |
| Notice | 온라인 헌금 안내 | 관리자 | 2020.03.23 |
| 1583 | 칼럼: 세상 이야기 5 | 김우영 | 2026.04.19 |
| 1582 | 바울의 지혜와 나의 묵상 3 | 김우영 | 2026.04.15 |
| 1581 | 바울의 지혜와 나의 묵상 2 | 김우영 | 2026.04.13 |
| 1580 | 칼럼: 세상 이야기 4 | 김우영 | 2026.04.11 |
| 1579 | 바울의 지혜와 나의 묵상 1 | 김우영 | 2026.04.10 |
| 1578 | <시> 하늘에서 내린 난제를 받아든 아브라함 | 김우영 | 2026.04.09 |
| 1577 | 칼럼: 세상 이야기 3 | 김우영 | 2026.04.07 |
| 1576 | <시> 디베랴 새벽 바다엔 부끄러움이 울렁거렸다! | 김우영 | 2026.04.07 |
| 1575 | <시> 어느 이른 봄날 새벽의 단상 | 김우영 | 2026.04.04 |
| 1574 | 칼럼: 세상 이야기 2 | 김우영 | 2026.04.04 |
| » | 칼럼: 세상 이야기 1 | 김우영 | 2026.04.04 |
| 1572 | 주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할 수 있을까? | 김우영 | 2026.04.03 |
| 1571 | 사랑의 존재 이유 5 | 김우영 | 2026.04.02 |
| 1570 | 사랑의 존재 이유 4 | 김우영 | 2026.03.28 |
| 1569 | 메시야 예수와 유대주의 종교, 그 상관 관계 2 | 김우영 | 2026.03.27 |
| 1568 | 세상 이야기의 시작과 끝의 모습 19 | 김우영 | 2026.03.26 |
| 1567 | 메시야 예수와 유대주의 종교, 그 상관 관계 1 | 김우영 | 2026.03.25 |
| 1566 | 세상 이야기의 시작과 끝의 모습 18 | 김우영 | 2026.03.23 |
| 1565 | 삶과 쉼의 이어가기 35 | 김우영 | 2026.03.23 |
| 1564 | 사랑의 존재 이유 3 | 김우영 | 202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