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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 이야기 5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 한 마디를 마치 명언처럼 강조하며 외우고 산다. 우린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또 자신의 지식이 자신의 자랑스러운 자산이요, 힘이라고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거리를 활보하며 언제든 입으로 자기 지식을 쏟아낸다. 다른 한 편으론 자신의 지식의 부족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다. 사실 지식은 대개 각자가 창의력으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남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그저 좌우 귀로 듣고, 혹은 책을 읽어서 수집한 것들을 자기 속에 담고 있는 지식이 대부분이지만, 일일이 누구의 지식이었다고 기억하질 못하니 모두가 자신의 창의적인 지식인 양 으스대며 공짜로 사용하고 살아가는 게 상식이다. 그런 지식들을 기억하고 있는 동안엔 자신의 고유의 지식처럼 사용하고 살지만, 금방 잊게 되면, 내것이 아닌 남의 지식은 단지 자신의 기억 속에선 오래 가지 못한다.
지금 내가 그 동안 배우고, 익힌 지식으로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혹시 아픔을 겪는 일은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나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만들어준 나의 주인 됨을 누리고 살고 있진 않은가? 그것이 하나님께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따라 살아가는데 내 지식이 도움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 지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사실 우리가 그토록 크게 의지하는 믿음조차도 제자들이 주님을 향해서 믿음을 키워주기를 바랄 때,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면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렇게 된다.’라는 누가복음17:6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자. 그 말씀의 이해에 보다 시급한 것은 나에게 아무리 큰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 믿음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기재가 바로 믿음이기에 자랑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식을 키우듯 믿음도 키워서 사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가진 믿음을 하나님께서 아무리 키워주신다고 해도 내가 무엇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는 수단이 곧 믿음이다. ‘그 작은 믿음 하나로 산을 옮길 수 있다.’라는 주님의 말씀의 뜻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자. 과연 내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께 과연 무슨 유익이 될 수 있겠는가? 내 믿음으로 산을 옮겼더라도 그 산이 내 소유가 될 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가진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선물이고, 그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니 그저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믿음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내 지식을 내 목숨처럼 여기고, 그 지식으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첫 아담의 지식으로 살아간다면, 그 지식의 결과가 과연 끝내 어떤 결과로 자신에게 돌아올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 곧 선악을 분별하는 그 지식 사용이 과연 오늘의 세상을 좋게 만들고, 또 좋지 않은 나쁜 세상을 좋게 고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죽음의 경고로 금하신 그 지식은 우리가 그 지식으로 살면 안 된다는 걸 미리 경고하신 것이다. 그 지식 판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순종만이 필요하다. 우리의 믿음에 우리 각 개인의 선악의 지식 판단이 들어서는 순간 그 선악 판단 지식은 이미 잘못된 것이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만든 세상은 지금의 세상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타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그런 세상이 펼쳐지기 전의 이야기부터 다음 장에서 서서히 시작해 보려고 한다. 성경의 기록상으로는 가인은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의 첫째 아들이다. 요샛말로 진정 애지중지 첫째 아들이니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은 첫 소생으로, 그의 동생 아벨과 혹 쌍둥이이고, 초태생으로서의 권리일지라도 그의 지식의 힘의 타락은 갈수록 격화될 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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