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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 이야기 3
창조질서 유지를 위한 확실한 대책이 무엇인가?
창조질서 유지라고 말했지만, 다른 말로는 생명질서 유지이기도 하다. 생명이 없는 무생물도 그것들 하나하나가 있어야 할 제 자리가 있는 게 생명살이기 때문이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제 자리가 지켜져야 한다. 제 자리를 떠나면 다른 존재와 갈등을 빚게 되고, 그런 갈등은 자리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기 마련이다. 인간 세상의 자리 싸움이란 분열된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이다.
생물체의 갈등은 금방 다른 생명체와 새로운 갈등이 일어나 다른 것들과 갈등의 불씨가 돼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지만, 무생물의 위치 역시 아무 데나 마음대로 각각 있고 싶은 곳에 자리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이든 자기 있을 자리가 아닌데 누가 자기 원하는 곳에 두게 되면, 그들 사이와 다른 것들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심지어 돌 하나라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큰 돌이 있어야 할 자리가 따로 있고, 작은 돌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각각 다르고, 쓰임새도 다르다. 바닷물을 막는데 모래를 사용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다윗이 사용한 물맷돌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있었기에 다윗이 주운 그 작은 돌멩이 하나가 골리앗을 넘어뜨렸던 보게 된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피조물들이 창조질서 사이가 바르게 지켜지기 위해선 질서를 유지하는 행동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결국 주인과 종의 관계이고, 그 관계 유지는 오직 한 가지, 순종이다. 종(從)의 생명 유지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주인에 대한 순종이란 뜻을 깊이 헤아려 보자. 가장 알기 쉬운 예를 든다면, 가정이란 생명체의 유지는 오직 한 가지 순종 뿐이란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있는가? 자녀가 독립해 한 가정을 이루기 전엔 부모에게 순종 하나로 살아가게 돼 있다. 아기는 엄마의 젖을 빠는 것부터 철저한 순종이다. 소위 순종의 법이 주인도 살고, 종도 사는 길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앞서 에덴동산을 이야기했지만, 하나님께서 한 가정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순종으로 살아갈 법으로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금하셨다. 선악을 분별하는 지식이 인간에게 허락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영원한 지식으로 만든 천지의 모든 피조물들이 결국엔 살아남지 못하게 되리란 사실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 한 가지 금령은 첫 사람 부부에게 오로지 하나님의 지적 판단에 순종하도록 가르치신 건 그들과 세상을 겸해 살리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만이 첫 사람 부부는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인류의 조상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자였지만, 불순종으로 창조주께서 금한 ‘선악을 알게 한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지적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영적 단절로 죽은 자로서 에덴의 동편으로 추방돼 저주 받은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다. 에덴의 동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세상이다.
첫 사람, 한 가정이 에덴의 동편에 터를 잡고 살아가지만, 에덴과는 전혀 다른 저주 받은 에덴의 동편 세상에 자리잡게 되면서 계속해서 그 가정에 비극이 연출된 걸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됐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살아남기 어렵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도 끊어낼 터이니 미움을 받아도 살아남기 힘들다. 창조주께서 필요하셔서 만들어 놓은 것까지 인간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테고, 필요없다 생각되면 당연히 가차없이 없애버릴 테니, 인간의 소유가 된 그 지식 앞에서 과연 무엇이 살아남겠는가? 결국 첫 사람 가정이 자리잡은 에덴의 동편은 인간이 에덴에서 불법으로 취득한 선악을 나누는 분별의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선악을 아는 지식이 지배하는 인간 중심의 세상이 바로 에덴의 동편 세상이다. 에덴이 하나님 중심의 나라였다면, 에덴의 동편은 바로 인간 중심의 세상, 인간의 선악의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변화돼 완전히 암흑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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