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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적 가정과 영적 가정, 그 차이가 무엇인가? 1
크리스천 가정에선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더구나 장성한 자녀들이든, 혹은 손자들까지도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지 않은 가정이 있을까?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대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가정에서도, 할아버지나 할머니조차도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 칭하며 기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이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이상타 여기는 가정은 아마도 없겠지만, 왜 하나님을 모두 동일하게 ‘아버지’라 칭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아는 사람도 드믄 실정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교회에서 어느 누가 기도하든 하나님의 호칭이 모두 동일한 ‘아버지’인데, 그저 ‘아멘’으로 화답하면서도 그 이유를 잊고 산다. 한 집안에서 손자 손녀로부터 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때 육적 가정의 족보가 달라진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눈치 채지 못하는 개인과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육신의 가정이 예수그리스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크리스천이 되면 하나님의 영적 가정으로 바뀐 사실을 장성한 자녀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실상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어쩌면 윗 분들이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기 때문에 ‘나는 왜 하나님을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영적 족보상의 변화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크리스천 가정에선 이미 혈육관계가 영적 족보로 바뀌어 모든 가정의 가족들 서열이 달라져서 한 분 하나님을 모두가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육적인 족보가 영적인 족보로 바뀐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의 족보가 바뀌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가정에선 영적 족보가 육적인 족보와는 왜 달라졌는지를 가르쳐주지 못한 어른들의 무관심이나, 혹은 육적인 가정의 서열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권위라고 생각하고, 그 권위를 잃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집안에서의 아버지란 호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서 자녀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고, 그저 육적인 가정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픈 마음이 바뀌지 않아서 그냥 지나쳐버린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한 가정에서 자녀가
성인이 돼 결혼하면, 한 집안의 아들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결혼한 아내와 더불어 양가 부모의 집을 떠나 또 하나의 핵가정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면, 부모의 가정도 핵가정으로 남아야 하는 건 시간 문제, 모든 자녀들이 새 가정을 이뤄 각각 핵가정으로 독립해 나가 살게 되면, 왜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결혼 이후엔 독립해 부모의 가정을 떠나게 하셨는지를 알고 이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맞는 예가 바로 노아의 여덟 식구, 노아부부와 세 아들들의 세 가정, 도합 네 가정이 핵 가정으로 독립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채 그냥 대 가족 공동체로 네 가정이 함께 살던 현실을 보게 된다. 노아는 의로운 자라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가르쳐 주신 핵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책망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 부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자녀가 없을 때, 이렇게 선언하신 걸 보고서도 왜 따르지 않았을까?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그 다음엔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니라(25).’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선 인류의 첫 가정을 부부 한 쌍의 핵 가정으로 지으셨고, 아담 부부에게 자녀가 생겨나지 않았을 때, 이미 자녀가 가정을 이뤄 독립해 살도록 말씀하신 사실을 노아가 잊었거나 알면서도 무시한 채 그의 자녀 세 가정이 한 아버지지의 가정과 동거가 아버지 자신의 나체를 보여준 허물과 한 아들의 실수가 가족과 인종 분리까지 생겼으니 어찌할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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