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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502): 생명 관계 유지를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금령
하나님과 그분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설정이 무엇으로 어떻게 형성돼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 중심의 뿌리로 삼아야 하는 것은 창조주께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실 적에 하나님 한 분 외엔 누구도 그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다른 피조물은 존재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께서 친히 세우신 창조질서를 바탕으로 홀로 모두를 하나로 엮으셨다고 단언할 수가 있다. 다른 것과의 공존의 질서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부딪치지 서로 엮여서 하나의 공동체가 되도록 지으셨기에 다른 것들과 공존을 깨뜨릴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서 차질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상에 재난이 일어나면 그저 쉽게 자연재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재해의 비극에서 아무 책임이 없는 듯 핑계하기에 바쁘지만, 사실은 자연재해가 저절로 자연재해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빚어진 인재였다고 밝혀진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보게 된다. 특별히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지킴이가 되도록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 존재이기에 자연재해서도 인간의 오류를 눈감아버리고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다.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말할 적에도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질 않은가?
인간 개개인은 다른 어떤 탐욕보다는 매사에 최고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하나님의 피조물, 그것도 모든 만물 중에 영장이라는 사실만큼은 확고하게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 잣대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사랑인가, 아니면 충성인가? 아니면 무엇이든 아낌없이 그분께 드리는 이런저런 귀한 선물인가, 혹은 다른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마다 그 대답이 각각 다를 수 있다. 어느 대답은 맞고 또 어느 대답은 부족하거나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우리의 생각의 바탕이 무엇일지에 대한 바른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창조주 하나님께는 두 가지의 피조물이 존재한다. 하나는 생명 없는 물질세계요, 다른 하나는 생명이 부여된 생명질서로 유지되는 또 다른 세계이다. 생명 없는 물질세계라도 생명질서와 어긋나지 않아야만 존재질서가 유지되게 창조되었다. 모든 피조물, 곧 물질세계나 생명질서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맞춰 서로 얽혀져 있다는 말이다. 어느 하찮은 것인 양 생각되는 피조물도 혼자서 아무 의미 없이 존재치는 않는다.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각자가 그 일을 인지하든 못하든 서로서로 필요로 하고, 서로 돕는 서로 상부상조의 질서 속에서 서로 의미 있게 함께 존재토록 창조되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의미 없이 존재케 된 피조물은 없다는 뜻이다.
길가에 하찮게 보이는 풀 한 포기일지라도 의미 없이 창조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에게 유일한 부정명령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을 금하신 뜻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의미 있게 지으신 것을 그것들을 관리 감독하도록 지으신 첫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선악의 가치를 부여하면 그 즉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유일한 존재인 사람과의 생명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첫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반드시 지켜주어야 했기 때문에 유일한 부정명령인 ‘선악을 아는 지식’을 죽음의 경고로 금하셨다. 죽느냐 사느냐의 치명적인 명령이었다. 선악의 지식이 오로지 하나님 한 분께 맡겨진다면, 인간의 자유와 행복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는 진리가 하나님의 뜻이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최초의 복음이 에덴동산에서 깨진 사실을 통곡하며 안타까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유마저 상실케 된 비극 중의 비극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에덴에서 우리가 모두 범한 죄 때문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