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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생각과 말의 차이
달력을 따르는 새해가 진정 새해일까?
아마도 모두가 달력 속의 새해 첫날을 맞았다고 말하면서, 더구나 특별하게 기뻐하면서, 또한 엊그제 너무 늦게 잠잤다거나, 더구나 직장도 쉬니 게으름을 피우면서, 새날의 몸짓과는 전혀 다르게 잠자리에서 뒤척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달력을 따르는 시간 속에 새날이 있을까? 시간은 저절로 흐르듯 생긴 것이 아니라, 그렇게 흐르다가 저절로 새날을 맞는 것이 아니다. 피조물인 시간이 새것일 수 있을까? 물론 하나님께서 빛과 흑암으로 만드신 시간이 창조주의 피조물이란 건 성경을 읽어야만 알 수 있다. 그러나 피조물인 시간 속에선 만들어진 것 중 그 어느 것도 새것이 될 수는 없다.
온 세상이 새해를 맞았다고 난리를 치고 있더라도, 미리 만들어진 달력에 나타난 새해가 새 시간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내겐 새날이 없다.’라는 엉뚱한 생각은 내겐 꽤 오래되었다. 일부로라도 이렇게 다짐한 적이 꽤 오래되었다. 마치 새날이라면 새 희망을 다짐하듯 새해 인사를 덕담으로 주고받기는 하지만, ‘내겐 진정 새것이 없다.’ 이런 반갑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생각이 구체화 된 것은 1950년 여름 한국 전쟁을 겪은 후 실제로 오랫동안 소위 새것을 손에 넣어 본 적이 없는 환경 중에 살았으니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져본 적도 없고, 기억되는 새날을 맞아 기뻐해본 본 적도 없으니 새것이란 개념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붙잡혀 노예 생활하던 400여년 후에 새로 만드신 첫 달의 14일 하룻저녁에 그 백성들을 해방시켜 자유인의 신분을 허락하실 때,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붙잡혀 살던 그 땅의 달력을 버리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만이 누리는 새달 곧 첫 달을 만드셔서 그달 14일에 유월절을 맞게 하신 후 이집트의 죽음의 암흑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의 새날을 허락하신 것을 보면서, 시간을 지으신 창조주께선 진정 온 백성에게 새날을 선물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레 되었고, 누구라도 하나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게 되는 날, 바로 그때가 새날이라는 사실을 감격스럽게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다. 시간에 붙잡히실 수 없는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언제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그날이 어떤 날이든 그날을 현재로 만드시고, 새날을 만드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생, 영원한 현재의 삶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두 강도와 함께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지만, 한편 강도가 자신을 주님께 부탁했을 때, 주님께서 ‘오늘 네가 낙원에 이르리라.’라고 영원한 현재를 선물하신 걸 볼 수 있다. 그 강도는 주님과 더불어 생명을 잃게 된 그 날, 바로 ‘오늘’이 새로운 영원한 생명을 얻은 구원의 현재가 되였다. 비록 육체가 십자가에서 죽는 날이지만, 대신 ‘오늘’,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새날, 곧 날마다 영생을 살게 되리란 신나는 약속을 받고. 그는 온갖 상처로 누더기가 된 육신의 생명을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