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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말과 생각의 차이 (505)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형용사나 부사가 믾지 않은 이유
일상의 언어생활이나 글쓰기에 있어서 형용사는 명사를, 부사는 동사나 부사, 혹은 형용사를 더 강조하려고 수식할 경우에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보고, 우리의 어법으로 강조하려면 얼마나 많은 형용사나 하나님의 동사적인 일에 많은 부사를 사용해서 강조해야 할 경우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아마도 부사나 형용사의 원형으로는 우리의 마음의 표현을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비교급으로 모자라고, 최상급을 사용해도 만족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마음졸이게 돼 있다.
그렇다면 형용사나 부사 사용이 적고 대신 명사나 동사가 많기도 하지만, 그런 표현은 오히려 상황을 바르게 혹은 진리를 표현하는데 더욱 더 유리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영역본인 NKJV의 시편 1편을 보더라도 형용사를 오히려 정관사 ‘the’를 붙여서 복수 명사로 바꿔 사용한 경우가 많은 걸 보면서 형용사 자체의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형용사의 명사화(名詞化)로 꾸밈의 강조가 아닌 문장의 핵심 요소를 보다 더 분명하게 강조한 번역을 보게 된다.
물론 누구라도 영역 성경에서 시편1편을 찾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되기에 성경의 맨 첫 책인 창세기 1장을 보면, 우리의 최고의 언어를 등장시키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천지와 우주 만물을 탄생시키는 놀라운 장면이 연출되지만, 창조의 셋째 날인 1:12절에 등장한 생명 있는 풀 한 포기라도 창조해낼 사람이 있다면, 전 세계가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입에선 ‘좋다.’, 곧 ‘good’이란 형용사 한 단어가 등장하고, 동일한 형용사가 일곱 번 등장할 뿐이다. 맨 나중엔 ‘좋다’를 꾸미는 ‘매우(very)’라는 부사 하나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좋다.’라는 표현도 과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은 모두 ‘좋다.’라는 원형의 선언이다. ‘더좋다(be better)’,‘가장 좋다(be best).’등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원형을 사람의 마음대로 바꾸지 말아야 함을 못박아 선언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더 좋게 혹은 가장 좋게 만들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인간이 무언가를 더 좋게 하려다가 하나님의 원형을 깨뜨릴 뿐이라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혹시 우리 부모들이 키우는 자신들의 자녀들을 향해 오늘의 세상을 더 좋게 혹은 가장 좋게 만들라고 격려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물론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그런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들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크리스천 부모들이라면, 아이들에게 가치관은 하늘의 하나님에게서 배우라고 가르쳐야 한다. 오늘의 세상 가치관에 빠지면 보다 나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돼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라는 엄청난 사건을 눈꼽 만큼도 과장해선 표현하지 않으셨을까? 진정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