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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왜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존재로 창조되었는가? 2
사람은 애당초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으로 창조되었다! <나>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란 뜻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할 때 동사나 형용사보다는 주로 명사로 표현돼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사적 표현엔 문장의 주어에게 한계가 있다. 그래서 비교급이나 최상급으로 강조를 부풀려 나가기도 하지만, 부사나 형용사로 꾸미게 되고, 부사나 형용사도 비교급이나 최상급으로 바꿔가며 더더욱 강조를 늘려나간다. 하지만,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신다.’는 표현 대신 ‘하나님=사랑’이란 원형의 표현은 더 이상 다른 강조가 필요치 않다. 절대자에게 비교급이나 최상급은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사랑한다.’라 말하면,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와 비교하고 싶지만,‘하나님=사랑’, 이면, 하나님의 본체가 곧 사랑이란 뜻이니 그 이상 다른 말이 필요치 않다.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을 어떻게 칭해야 할지를 여쭈었을 때, 하나님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나야( Iam!).’
이렇게 답하셨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아버지의 이름 대신 ‘아버지’란 호칭을 사용하고,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언제나 ‘나다, 혹은 나야!’ 이렇게 답하면 자녀들은 그분이 아버지이신 줄 알게 돼 있다.
이런 아버지나 혹은 어머니에게 갓 태어난 어린아기는 진정 가엽고, 애처롭기 그지없는, ‘불쌍한 내 새끼’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의 속성 중 중요한 것은 인간이 불행에 빠졌을 바로 그 때 긍휼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듯이 하나님의 긍휼이 영원하다고 선언되었다.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사54:8).’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부터 넘쳐나는 하나님의 긍휼로 창조를 시작하셨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도 요한은 창조주 하나님을 한 마디로 ‘하나님은 사랑’이라 표현했지만, 사랑의 내용을 긍휼로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을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부부는 아이 잉태를 알고 나서 앞으로 낳은 아이를 위해 모든 것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준비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영원하시기에 그분의 창조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어성경에선 긍휼을 Mercy나 Compassion 보다는 sreadyfast love혹은 그냥 love 로도 번역된 반면, 우리 말 성경은 긍휼 혹은 자비를 사랑이나 은혜로 번역된 경우가 많다.
영어성경에선 자비나 긍휼을 원래 ‘깊이 있고, 영원히 끈질긴 원천적 사랑’으로 표현돼 있어 긍휼이나 자비의 뜻을 보다 강한 어조로 번역된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자녀를 갖게 된 부모의 자녀 사랑이 바로 불쌍히 여김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독립된 자아가 아니라, 애당초 부모의 사랑을 떠나선 아이가 생겨날 수도 없고, 생겨났다고 해도 한 순간도 부모의 도움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불쌍한 존재라는 것이 부모 안에서의 자녀의 정체성이다. 자녀를 향한 부모 마음은 항상 ‘불쌍한 내 새끼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