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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긍휼을 대치시킬만한 더 좋은 것이 무엇일까?
늘 부족하게 생각되는 재물일까, 세상에서의 명예나 출세나 권력일까?
진정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긍휼과 맞바꿀 수가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긍휼의 실체를 정말 정감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 인간이 모든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만물의 영장이란 자부심을 잠깐 내려놓고,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으로서의 우리 인간의 실체가 어떤한 지 살펴보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 인간에겐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존심이란 것이 존재한다. 누가 아무리 가난하고, 병들고 , 또 몸과 정신을 무언가에 사로잡힌 약함이 있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살고 있다 해도 누구든 자존심만큼은 잃지 않겠다는 마음의 굳건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자기 스스로 ‘나는 결코 불쌍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한 가정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자녀의 자존심만큼은 지켜주려고 애쓴다. 부모가 자녀에게 험한 욕을 한다거나 이웃의 자녀와 비교해서 자기 자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은 되도록 없게 하려고 부모들이 내심 애쓰는 건 다 알고 있다. 물론 이런 부모들의 생각엔 정당성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자녀 사랑은 과장이거나 더 큰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가 거짓말 하는 줄 알고 있지만, 눈감아주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일까?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선 애당초 긍휼의 마음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 무언가를 부족하게 지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조화를 위해서 크고 작은 혹은 강약의 다른 모습으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금,은,동의 차이도 있어야 하고, 바위와 흙의 차이도 있어야 한다. 강물과 바닷물의 차이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세상에서 잠시잠깐 누리는 것들과 하나님의 영원한 긍휼을 바꾸어 산다면 과연 얼마만큼 만족하며 기쁘게 오래 살아갈 수 있을까? 찰라적인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바꾼다면,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며 살 수 있을까? 시간 속 수명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살고 싶은가? 과연 무엇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곧 영생과 바꾸어 갖고 싶은가? 앞서 보았듯이 긍휼의 은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인데, 그 영원한 은혜를 과연 시간 속에서 무엇과 바꿔 누리고 싶단 말인가? 사도 바울이 과연 무엇을 소유하고 살기에, 더구나 날마다 어떤 위험에 처해 살기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했을까? 실제로 그는 날마다 죽음을 경험할 만큼 위험 가운데서 살았다. 복음전파의 삶이 자기 동족과 이방인으로부터 날마다 죽음을 대면한 위험한 삶의 연속이었다는 고백이다. 주님이 부활로 우리를 살릴 약속을 하셨기에 오늘 죽어도 ‘나는 오늘 다시 살게 되리라.’ 고백한 건 주님의 부활의 확신 때문에, ‘오늘 죽어도 나는 다시 부활로 살리라.’고 다짐한 것. 그는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빌1:21), 더구나 ‘그리스도를 살지 않으면 죽음은 유익이 없다.’라고 고백했다. 그리스도를 살려고 그는 율법에 대해서도 죽었다. 그는 부활의 소망 때문에 죽을 각오로 복음을 살았고, 하나님의 긍휼이 삶을 유지하는 힘이었다. 그의 잦은 죽음의 고백은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하다는 약함의 표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