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게시판
HOME > 나눔터 > 나눔 게시판
그 말씀이 이끄는 삶의 묵상 1
하나님의 형상(Image)을 지닌 자로서의 사람
오늘의 세상 속엔 사람이라 지칭하기 민망하거나 부끄럽게 생각되는 그런 존재가 많다고 마음 아파하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이야말로 만물 중에서 독특한 존재라고,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는 현실에서, 더구나 광대한 우주만물, 그 가운덴 새도, 물고기도, 하늘엔 수억 개의 별을 펼쳐놓으시고서도, 그저 간단히 ‘좋다(good).’란 한 마디로 마감하신 반면, 마지막 날에 지으신 사람에 관해선 ‘매우 좋다(very good).’라며 창조주께선 감히 다른 것들에 비해 격을 높혀주시려는 듯 ‘매우’라는 부사를 덧붙이신 걸 보면, 아무리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 실재하고, 이 글을 쓰는 사람조차 부끄럽기 그지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쁘다고 감히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폄훼할 수는 없지 않겠나 싶다.
여기서 우선 살짝 언급하고 지나갈 일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엔 비교급이나 최상급을 잘 사용치 않은 걸 볼 수 있고, 과장도 없다는 사실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에 대해서 우리가 엄지를 치켜세우고, ‘최고야’라고 말하는 표현 자체가 감히 하나님을 비하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가장 완전하게 높히는 표현은 ‘전지전능무소부재’라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그 어떤 다른 사물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어떤 다른 상대적인 것들처럼 ‘더 낫다.’거나 ‘가장 좋다.’라는 상대적 비교가 불가능하다. 절대자 하나님을 상대적인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표현에선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대상에는 Superior 나, 초인을 말할 적엔 Superman 을 사용하지만, 상대치로 사용치는 않는다.
하지만 사도 요한을 통해 말씀하신 주님께선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신다. ‘I am the good shepherd . The good shepherd gives His life for the sheep(John10:11).’ 양들을 위하여 생명까지 내놓으신 목자 예수께선 그냥 ‘선한(good) 목자.’라는 표현을 과장 없이 원형을 쓰신 것이다. 목숨까지도 내놓고 일하시는 목자이시면서도 그냥 ‘good shepher.’로 자신을 소개하셨다. 한국의 유투브를 보면 과장 아닌 기사는 하나도 없다. 과장 역시 거짓말이라면 유투브는 거짓말하러 나온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선 어째서 사람을 창조하시곤 ‘매우 좋다.’고 강조하셨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만이 하나님께 뿌리를 둔 자로 표현하신 후에 사람을 지으셨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 땅에 보내실 때, 우리 같은 모습의 인자를 옷입고 우리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보내신 것 자체가 매우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중 한 분인데 바로 사람의 아들로 보내신 것이고,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이 가능한 존재라고 기뻐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모든 피조물이 의미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의 독특성을 잊어선 안 된다.
바울의 편지 로마서8:34-39절을 보면 우리는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더구나 우리가 하나님과 적대관계 속에 빠져 있을지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보장돼 있는 존재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선 이미 에덴에서 하나님과 단절돼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해주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의 모습을 옷입고 인자의 모습으로 땅에 오셨다는 사실만큼 낮아지심의 헌신과 긍휼의 은혜를 죽기까지 보여주셨는데 우리가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조차 잃어버린 종이면서도 날마다 순간마다 주인인 양 포장하거나 과장해서 살고 있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