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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의 시작과 끝의 모습 7
가인에게 내려진 형벌의 의미
최초의 농부 가인에게 그가 가꾸던 땅에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은 가인에게 가해진 실질적인 형벌이었지만, 가인 개인적으로는 ‘땀흘리고 고생을 좀 해야해’라는 가벼운 형벌일 수도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죽인 살인자에게 내려진 형벌치곤 너무 무겁다고 읍소하기조차 민망한 처벌 수준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선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4:10). 하나님께선 가인에게 ‘네 이놈, 네가 네 동생을 쳐 죽였지?’, 이렇게 직설적으로 꾸짖지도 않으셨다. 세상에서의 살인자에 대한 검사의 논고와도,판사의 선고와도 너무나 달랐고, 부드러웠다.
그것도 한 가정의 두 형제 중에서, 더구나 형이 동생을 일부로 들판으로 불러내 살해한 죄를 진정 누가 용납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은 단지 가족간에 일어나 분쟁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도 부모의 두 아들을 마치 쌍둥이처럼 가인과 아벨을 형제로 묶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셨는데, 형이 동생을 불러내 쳐 죽이고, 이제 가인 혼자 남았으니, 하나님께선 가인을 살리시려고 애쓰신 여러 정황들로 바라볼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자, 가인은 퉁명스럽게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되물어 오히려 하나님의 말문을 막으려 하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네 아우의 핏소리가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다구치듯 물으시고,’ 다시 이어서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이제 땅의 저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12). 가인에게 땅을 저주하신 것은 가인이 더 이상 농부로서는 힘든 삶을 살게 되리라는 점을 직설적으로 말씀하셨지만, 가인이 자신이 받은 죄벌이 너무 무겁다고 하소연 한다.
가인이 받을 죗값: 땅의 저주와 그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는 형벌!
너무나도 가식이 넘쳐난다. 과연 살인자로서 죽음 대신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과하신 죗값이 그토록 무거운 것일까? 첫째는 땅이 저주 받았으니 땅이 가인에게 효력을 주지 않을 것이란 형벌이었고, 다음은 가인이 그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형벌이었다. 아마도, 가인은 ‘아이구 살았구나!’라며,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숨을 쉴 것도 같았지만, 그는 두 가지 징벌에 불만을 토로한 걸 보게 된다. 땅이 받은 저주는 가인의 부모조차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은 댓가로 이미 받은 형벌이었기에(창3:17,18), 가인이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만,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겁다.’란 변명은, 그가 하나님께 늘어 놓은 그의 변명치곤 너무 가소로워 보인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라리니 내가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
그의 하소연이 뜻하는 바가 과연 무엇이었나? 주님께서 가인을 쫓아내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라고 한 그의 변명엔 조금도 진정성이 보이질 않는다. 가인의 행위는 모두 하나님께서 그를 보고 있는 중에 행한 짓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하나님을 뵈옵지 못할까봐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진정 가식이 아닌가 싶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지적에 토를 단다, 이런 태도는 죄인의 오만에 불과하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 죄를 짓고 내벧는 변명이 무엇인가? 가인은 진정 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지 오래 전이었다. 하나님의 추방명령을 ‘제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지 못하면 어쩌지요?’라는 변명은 너무나도 뻔뻔한 가식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가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경고하는 똑같은 뜻의 목소리로 들린다. 가인은 땅에서 유리방황하게 되는 경우엔 나를 만난 자가 자신을 죽일 거라고 호소한다. 동생을 아무런 이유도 없, 말 한 마디 없이 쳐 죽인 자가 자신이 죽을 것을 걱정하는 것도 진정 어울리지 않는 억지 과장처럼 들린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할 수 없는 말이나 태도는 각자가 죄인이 아니라는 죄의 부정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외면하는 가당치 않은 죄이다. 물론 긍휼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다고 해도 용서 받은 죄인일 뿐, 그가 용서 받아도 그가 죽인 동생이 살아나지 않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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