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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의 시작과 끝의 모습 12
뒤틀린 뱀의 여러 형상들로 채워져 가는 세상의 모습
사탄의 형상으로 묘사되는 뱀의 동물적 속성을 통해 하나님의 영(靈)을 대적하는 사탄의 다양한 행태를 미루어 짐작해 보면, 오만한 지식의 난무로 사람들이 모두 나름대로 하나님 노릇을 하고 있는 뒤틀린 실상을 우리의 육안으로도 분명히 볼 수 있다. 필자가 ‘오만한 지식의 난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죽음의 경고로 금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사람이 바로 옆에 있던 생명나무를 손대지 않고, 절대 손대서는 안되는 ‘지식의 나무 열매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를 묵살하고, 생명나무보다는 지식의 나무를 따먹고 전지전능하신, 절대지식의 유일한 소유자이신 하나님을 대적했기에, ‘오만한 지식의 나무’라는 표현을 쓴 것임을 밝히면서 이 글의 진행을 위해서도 인간이 취득한 지식 사용을 죽음을 불러들인 오만한 행위로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죽음의 경고를 발하신 선악의 지식은 과연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선 창조가 끝나면 계속 ‘좋다(good).’고 선언하셨으니, 그것을 부정하거나 달리 만들려는 시도가 곧 ‘좋지 않다(not good)’ 고 거부하는 모든 언행이 곧 악(not good)이란 뜻이니 세상에 악(惡)이 나타나기 전에 선악을 한 쌍으로 묶어 밝히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좋다.’라고 선언된 것. 선악을 아는 지식은 사람이 먼저 사용한 개념이 아니다. 피조물의 가치는 피조물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정하신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끝내신 후에 후렴처럼 되풀이하신 말씀이 ‘좋다.’라는 선언이었으니 하나님의 선언을 누가 부정할 수 있나? 모든 피조물의 결과가 모두 ‘좋다.’라고 선언된 것.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모두 ‘좋다.’이다. 하나님의 ‘좋다(good).’의 선언이 곧 선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고, 가장 좋은 것도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창조에서 좋은 것의 원형이 선언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선하다. 곧 좋다고 판단하신 모든 피조물은 ‘선하지 않다.’ 곧 ‘좋지 않다.’는 상대적인 것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리 ‘선과 악’을 한 짝으로 선언하셨으니 선악에 관한 판단 지식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의 절대 지식인 셈이다. 어떤 피조물도 선악을 바꿀 수 없다. 온 우주만물의 창조가 바로 창조주의 작품이고, 모든 피조물의 가치를 인간이 판단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판단에 의해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이 모두 하나님의 선악 판단에 따라 관계 속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어둠은 싫고 빛은 좋다라고 생각하면, 당장 낮만 존재하고 밤이 사라지면, 우리의 잠이 사라지고 평안이 사라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밤의 어둠과 빛의 낮으로 하루라는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창1:3-5). 곧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모든 것들은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을 한 쌍의 관계로 묶어두셨다. 그 관계가 선악으로 하나가 된 관계라는 선언이었다. 관계를 이루는 것이 곧 선악의 생명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온 선악 판단이기에 지음 받은 피조물인 존재가 선악을 판단해 자기가 ‘안 좋다.’고 제거해버릴 수 없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보여주시고, 선악을 판단치 못하도록 금하신 것. ‘좋다.’와 ‘안 좋다.’가 하나되는 관계가 바로 선악의 존재 이유가 된다. 선악 개념의 선후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앞의 개념이 ‘좋다.’인데, ‘안 좋다.’란 개념은 앞의 ‘좋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 관계를 통해 좋게 된다는 뜻이다. 어둠이 빛을 만나자 밤이 되고, 밤이 낮과 더불어 하루라는 시간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한 몸의 오른 손과 왼 손은 180도 서로 다르다. 오른 손,오른 팔이 힘이 더 강할 수도 있고, 왼손, 왼 팔이 더 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팔, 두 손은 서로 돕는 관계로 하나이기 때문에 선악, 곧 ‘좋다.’와 ‘안 좋다.’로 나눌 수가 없다. 실제로 선과 악은 하나님께는 절대로 적대관계가 아니라, 서로 하나되어 서로 돕는 공생 관계이다. 선악간의 지식은 오직 창조주 한 분만이 아시고 행사할 수 있는 지식이기에 사람에게는 선악을 아는 지식을 애당초 금하셨던 것. 그 종류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 서로의 관계 속에 존재해야 할 각자의 사명을 잊고 자신과 다른 존재의 선악을 마음대로 행사하면 다른 존재가 어찌 살아남을 수가 있겠는가? 선악의 지식은 피조물의 행동의 근거가 아니라, 창조주께서 서로 다름의 관계를 조화롭게 하시려는 창조주로서의 판단의 도구일 뿐, 인간이 행동으로 선이나 악을 구분하는 지식적 패턴의 도구가 결코 아니다. 선악을 아는 것은 오직 창조주의 고유의 지식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 지식을 갖게 돼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과 악을 엿장수 마음대로 행사하기 때문에 세상은 이처럼 엉망진창, 뒤틀린 세상으로 계속 변해가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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