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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더불어 하루하루 5
하나님의 창조 사역, 그 자체가 온 만물의 복음이다!
인류가 미생물에서 진화한 소산물이라고 말하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는 시대 가운데서 인류가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라고 선언된 사실이 곧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시작이며 동시에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복음이란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지음 받은 모든 피조물이 지음 받은 그 사실을 인식하는 모든 피조물이 복음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잊거나 무시하는 것 자체가 비(非) 복음, 혹은 무(無) 복음적인 세상이고, 대신 인간 스스로 대체자를 만들어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비 복음 혹은 무 복음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선 애당초 창조 사역의 근본이 복음이고, 근본적인 복음이 깨뜨러진 경우를 대비하신 또 다른 복음을 전제로 한 복음을 그 바탕에 깔고, 창조주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 그 자체가 하나님의 복음을 바탕으로 시작되었고, 복음으로 마무리하셨다는 뜻이다. 창조질서를 세워가시는 동안에 뒤늦게 그럴만한 이유를 발견하고 복음을 중간에 끼워 넣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태초에’, 곧 천지 창조 때에도 복음이 그 근저에 이미 들어있었다는 뜻이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크리스마스 전에도, 심지어 창조 전에도 예수의 복음은 원형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증거는 다음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요1:1). 바로 이 말씀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뜻하신 바를 몸소 이루신 분이란 선언이고,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과 그분이 이루신 모든 사역 전체가 하나님의 복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중요한 요절이다. 또 하나의 복음의 특징을 말하자면, 삼위 하나님의 입체적인 활동이었다는 점이다. 삼위 하나님의 하나 되심이 아니었다면, 복음은 복음이 될 수가 없었다. 삼위 하나님의 한 몸, 곧 일체 되심에서 어느 한 분을 제외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은 아니다. 신구약에 나타난 이런저런 고난이나 슬픔이나 기쁨이나 행복과 관련된 모든 사건이 복음 안에 녹아있는 사실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고난이나 슬픔 가운데서도 복음을 찾아야 하고, 기쁨이나 행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좋은 것이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좋은 것이어야 복음이다. 내가 싫어하고, 멀리하는 것 가운데도 복음은 복음 그대로 건재한다. 복음은 나, 혹은 너 가운데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사복음이라고 해서 복음이 네 권의 복음서에 한정돼 있는 게 아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창세기1:1만큼 중요한 복음의 선언은 없다. 모든 피조물이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선언이 아닌가? 특히 살아있는 모든 생물이 삶의 목표가 선언되었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도, 꽃 한 송이도, 밀이나 보리아 같은 곡식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만 자기 삶의 목표가 세워지게 마련이고, 따라서 자기 삶의 목표가 성취되기 마련이다. 특히 창세기 1장 셋째 날에 창조된 식물이든, 이어서 창조된 동물이든, 새든, 물고기든 각각 ‘그 종류대로’ 다르게 지음 받았기에 각각의 삶의 양식이나 존재 양식이 각각 다르기 마련이다.
각각 ’그 종류대로‘ 지음 받았기에 각각 독립적이고, 다른 것들과 더불어 복음의 삶, 존재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행복한 삶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선 서로의 다름을 각각의 계급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서로가 경쟁하는 계급적 높낮이가 아니기에 서로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복음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서로 다르기에 서로 각각의 존재를 위한 싸움의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복음의 삶을 가능케 하셨다. 각각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화합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고, 맨 나중에 지음 받은 존재로서 온전히 하나님 한 분이 관장하는 선악의 지식으로 모든 피조물들이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선악의 지식이 만물의 평화의 열쇠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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