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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지혜와 나의 묵상 4
사울은 부활의 주님의 강제 부름 때문에 바울이 되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로부터 임한 주님의 복음에 스스로 감동해서 스스로 믿고 삶과 신분이 바뀐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께서 강제로 그를 부르는 순간 소경이 돼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분께 진정으로 굴복한 후 사도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 사울이 복음으로 변할 사람이었다면, 그의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며 남아 있던 사도들에게 신앙을 고백하고 변화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쉽게 변할 사람이 아님을 부활의 주님께서 미리 아시고, 공중에서 그의 이름을 친히 불러 복종케 하신 다음에 복음을 이해하고 특히 이방의 사도로 만들어 그를 보내신 걸 볼 수 있다. 자신의 눈까지 멀어 소경이 되었으니 그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게 된 처지였다. 그는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소경이 되었으니 실로암으로 인도돼 고침을 받을 수조차 없었다. 어쩌면 소경이 되었다가 다시 눈을 뜨게 되는 기적적 변화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진정 그는 부활의 주님의 부르심에 굴복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헤아려 봄직 하다.
그가 부활의 주님으로 부터 부름을 받고 주님을 직접 만나게 된 후 그가 깨달은 건 예수께선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친히 약속하신 그리스도, 곧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하늘에서 자신을 부르신 그분을 자신의 주님으로, 아니 그리스도, 곧 메시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가 그 동안 그가 배우고 믿고 따르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야를 만난 고백이 있었고, 자신의 고백이 바로 그가 이방인들에게 전한 복음이었다. 그가 그토록 부정했던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친히 약속하신 메시야란 사실을 깨닫고 예수는 곧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목소리 높여 외친 것이다.
예수께선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사울이 스스로 깨닫된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그가 바로 그리스도교, 혹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든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바울은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다메섹 도상에서 개인적으로 만난 후에 부활의 주님,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가는 도중에 공중에 임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비로서 예수는 곧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그가 들어간 회당에서 외친 건 그가 처음으로 외친 복음이 곧 예수=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그 사건으로 인해 율법에 정통했던 바리새인의 신분에서 벗어난 것이고, 율법을 내세워 만들어진 유대주의라는 종교에서도 벗어난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로 인해 바울은 유대주의자들로부터 핍박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백성들로부터 죽여 없애버리려는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유대주의자인 그가 이제 유대주의자들의 핍박의 대상, 살해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가 이제 죽음을 무릅쓴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평안하고 더 높은 삶을 위한 결단이 아니었다. 그는 그 동안 어리석음에 붙들려서 유대주의 종교와 율법에 붙들려 있었지만, 그가 그 동안 붙들고 있던 율법과 종교적인 열심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인 지혜로 결단을 내렸다. 많은 지식으로 지혜를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 일, 그러나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란 자랑스러운 오래된 지식을 버리고, 더구나 그로 인한 핍박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서 진정 참된 지혜로 주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이방의 사도로 보냄을 받았다. 자신의 노력의 결정체인 지식 대신 영적 지혜를 택한 것. 결국 바울의 지혜는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에겐 언젠가는 바울의 지혜를 좇아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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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ice | 온라인 헌금 안내 | 관리자 | 2020.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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