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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지식의 관계 1
생명과 지식의 관계를 성경 어디서 찾을까?
어쩌면 너무나 확실하고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과 지식의 근원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쉽게 대답할 그리 쉬운 질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좀더 보다 깊이 생각해 보고 대답할 철학적인 질문도 아니고, 어쩌면 날마다 너무나도 쉽게 마주치는 보통 명사인 것 같은데 대답은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독자에게 대답을 어렵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생명과 지식의 정의를 묻는다면, 오히려 나름대로 어떤 대답이 나올 것도 같지만, 어디서 연유했는지 그 근원을 묻는 질문에는 한참 머뭇거릴 수는 있어도,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숲에 가서 살아 있는 나무나 풀들을 보면서 혹은 숲속에서 사슴도 보고 집주변에서 다람쥐도 보고 집 주변에서 서성대는 참새들을 고개들어 살피기도 하고, 생명의 실체를 어디서든 보고 만나서 만져보기조차 하면서도, 아니, 나 자신도 생명을 살고 있고, 나의 식구들도 나의 이웃들도 생명을 살고 있는 걸 사실로 보고 만져 겅험하면서도 정작 그 근원에 관한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크리스천이라면, 생명과 지식이 마치 아주 가까운 한 묶음처럼 언급된 사실을 성경에서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그것도 낙원이라고 말하는 에덴 동산, 더구나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또 따먹을 수 있는 열매가 달린 두 그루의 나무가 동산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 사실이 기록된 성경을 읽어보면 쉽게 찾을 수도 있다. 더구나 두 그루의 나무가 친구처럼 동산 중앙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고, 두 나무 중 한 나무엔 열매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경고까지 제시되었으니 ‘생명나무’와 ‘선악을 아는 지식의 나무’는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생명나무’와 나란히, 마치 친구처럼 서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바로 최초에 언급된 지식의 나무이다. 지식의 주제는 바로 선과 악, 보다 쉽게 말하면, 각자의 생각에 ‘좋다.’는 것과 ‘좋지 않다.’는 이 두 가지 판단이 곧 지식적 판단이다. 무언가를 아는 것이 각자의 지식인데, 그 지식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의 판단을 하나님께서 엄히 금하신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두 사이를 알지 못하면, 두 가지를 둘 다 소유하고서도 선인지, 악인지 판단하지 못하면, 진정 쓸모있는 지식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글 제목에서 ‘생명과 지식의 관계’라고 아주 간단히 말했기에 오히려 어렵게 느겨졌을 수 있다. 왜 성경에 생명나무와 지식의 나무가 나란히 언급돼 있었을까? 보다 깊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생명과 지식이 죽음과 한 묶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신기한 조합을 찾아 볼 수 있으니 진정 의외로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은 우리가 살면서 순간마다 경험한 것이기에 생명과 지식의 관계가 죽음만큼 가까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명과 지식의 조합이 바로 ‘생명과 죽음’의 조합이라니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호가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옛날의 어머니들조차도 이 구호를 알고 자식들에게 공부를 격려하는 말이었다. 분명히 이 구호는 어쩌면 생명에 관한 격려였지만, 에덴엔 생명과 지식의 관계가 죽음의 경고와 연결돼 있는 사실을 보면서 진정 이해하기 힘들다고 고백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우리 죄의 속량으로 우리의 새로운 생명과 연결돼 있으니 진정 신기한 조합이 아닌가 싶다.
첫 사람은 모두 선악을 아는 그 지식 때문에 죽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때문에 우리가 다시 살게 되었으니 진정 신기하기 그지 없는 일이 아닌가? 지식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힘을 발휘한 것일까? 우리가 무엇인지를 알면 지식 판단이 등장하게 마련이고, 지식에 따를 우리의 행동과 그 결과는 내가 좋다고 판단한 것도, 내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도 속절없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비극을 맞는다. 왜? 그 지식이 바로 죽음의 지식이기 때문에 그러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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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ice | 2024 VBS (여름성경학교) 등록 안내 | 관리자 | 2024.03.29 |
| Notice | 그레이스교회 제3대 담임목사 청빙공고 | 관리자 | 2023.10.13 |
| Notice | 온라인 헌금 안내 | 관리자 | 2020.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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